아이들이 최강의 협상가?

By 김기홍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

“싫단 말이야. 왜 나보고 그걸 하라는 거야?“ 몸에 나쁜 패스트 푸드 대신 청국장이나 비빔밥을 먹으라고 하거나, 공부할 시간 을 확보하기 위해 인터넷 게임을 하지 말라고 하면 아이들은 즉각 반발을 한다. 사춘기에 접어들면 이처럼 불평만 하는 것 이 아니라 ’왜요?‘하고 저항하기도 한다. 자식이기는 부모없다. 맞는 말이다. 달리 말하면 사상 최강의 협상가는 바로 아이들 이다. 왜 아이들은 협상을 잘할까? 그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우선 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분명히 알고 있다. ‘부모 가 무어라고 하건 나는 햄버거를 먹겠다.’ ‘5000원짜리 블루클 럽에서 절대로 머리를 자르지 않겠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인터 넷 게임을 해야 한다.’

아이들의 협상목적은 대부분 명료하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 렇지 않다. 협상강의를 할 때 협상의 경험이 어느 정도 있느냐 고 물으면 50% 이상이 ‘협상 경험이 별로 없다’고 대답한다. 협 상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협상을 하고 있는지 그렇 지 않은지 모른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래서 협상에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있 는지 알지 못한다. 그냥 ‘대충’ 넘어간다. 하지만 인생의 8할이 협상인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지 못하니 바람부는대로 물결 치는대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둘째, 자신의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그 목적이 달성되지 않는 한 좀처럼 양보하지 않는다. 나이가 어릴수록 이런 경향은 더 심해진다. 최씨 가문의 이야기다. 어린 손자 최홍기가 콜라 를 사달라고 마구 때를 쓴다.

‘콜라는 어린 아이들이 자라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꾸 보 채면 맞는다.’ 홍기의 아버지가 이렇게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 는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한 대 때린다. 보통의 아이는 어른이 이렇게 말하고 한 대 때리면 자신의 요구를 접는다. 하지만 최 홍기는 한 대를 맞은 뒤 자신의 요구를 접기는 커녕 오히려 ‘자 신의 머리를 벽에다 마구 찧는다.’

콜라를 사달라라는 요구에 자신을 올인한 셈이다. 홍기의 아버 지가 오히려 기겁을 한다. 애 다칠까 서둘러 요구를 들어준다. 최고집이란 그래서 빈 말이 아니다. 최씨 가문의 아이들은 자 신이 원하는 바가 있을 때 양보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습득한 셈이다.

셋째, 아이들은 부모가 결국은 자신들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협상의 상대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 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부모는 그치지 않는 샘의 원천이고, ‘마르 지 않는 자동현금 인출기’이다.

세 살 먹은 꼬마가 일요일 아침 부모님 침대에 기어오르며 한 마디 한다. “아빠 나 좋아해?” 생글생글 미소를 지으며 하는 이 말에 부모는 그냥 ‘뿅 가 버린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그럼’ 하고 말하는 순간 아이의 요구가 나온다.

“아빠 나 초코렛 먹고 싶어.” 당신이라면 이런 아이의 요구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아이들은 고집을 부릴 줄만 아 는 것이 아니라 적절히 상대방을 뛰우는 것이 자기에게 유리하 다 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와의 협상에 관한한 최강의 협상가다. 하 지만, 그 아이들도 자라면서 변한다. 부모와의 협상에 있어서 는 막강하지만 학교에 나가면, 사회에 나가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집을 부릴 때 상대방도 고집을 부리면 얻을 수 있는 것은 하 나도 없고 갈등만 커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최홍기가 콜라를 사달라고 머리를 벽에 찧는다면 다른 아이들은 경찰이나 병원 에 신고한다) 자신의 목적이 아무리 분명해도 그 목적이 합리 적이지 않을 경우 가끔씩 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 을 경험하기도 한다.

햄버거를 먹어야 한다는 자신의 고집이 뚱뚱한 몸매로 인해 무 산되기도 하고, 인터넷 게임을 해야 한다는 고집이 떨어진 성 적 때문에 저절로 철회되기도 한다. 삶의 현실을 알아갈 수록 어릴 때 가지던 고집과 맹목이 점차 약해진다.
 
하지만, 정작 협상이 무엇인가를 배워야 할 때는 이 때부터다. 맹목적인 부모와의 관계에서 행하던 협상 경험을 잊어버리고 협상이 무엇인지를 아는 ‘합리적인’ 협상가로 거듭나야 한다.

합리적인 협상가는 사상 최강의 협상가가 사용하는 전략 보다 는 협상이 이루어지는 ‘맥락’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다. 예컨대, 양보해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원칙을 지켜야 할 때와 그렇 지 않을 때, 목표를 고집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별할 줄 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역설적인 것은 어른이 된 뒤에도 ‘사상 최강의 협상가’가 사용하는 협상전략이 종종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 그래서, 협상은 즐겁다.

Leave a Comment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