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턴트 칼럼] 상자(象自)와 진실

필자는 올해로 결혼한지 11년 되었다. 내 또래에 비해 결혼이 늦은 편이다. 결혼한지 4년 차 되던 해에 충격적인 일이 발생한다. 늦은 밤 서재에서 책을 찾다가 우연히 책꽂이 있던 아내의 일기를 보게 되었다. 여러 편의 일기 중에 충격적인 글을 발견한다. 아내가 필자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글이 있었다.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후회한다’는 글자만 초점으로 잡히고, 나머지는 뿌옇게 배경처리 될 정도였다. 깜짝 놀랐다. 그 일기를 보니, ‘내가 자신의 말을 경청도 하지 않고, 이기적이고, 자기 주장만 펴는 독선적인 남편’이라고 적혀 있었다. 당시에 필자는 대학원도 다니고 있었고, 리더십에 큰 관심을 갖고 무척 열심히 리더십을 공부하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거기다가 대인관계와 관련된 구체적인 스킬을 가르쳐주는 교육 과정도 열심히 청강을 하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즉, 필자는 당시 한창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인간 심리를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론으로 무장하였고 배운 이론대로 아내에게 적용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남편으로서 위기를 겪었을 뿐만 아니라 리더십 강사로서도 위기를 겪었다. 큰 두려움이 느껴졌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방법을 찾기 시작하였다. ‘부부 상담을 받아야 되는가?”나 혼자 상담을 받아야 되는가?’ 등등 그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 하던 차에 아주 우연히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2일간의 리더십 워크삽에 교육생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그 워크삽을 통해 필자는 그 동안 내 자신을 속이고, 아내를 속이고 있다는 진지한 성찰을 하게 되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적인 잣대로 아내를 대했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 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었다. 아내의 슬픔과 고통이 눈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 아픔에 공명하게 되었다. 그러자 내가 아내를 대하는 태도와 행동이 달라지게 되었고, 아내도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큰 고비를 넘기고 살고 있다. 물론 그 사건 이후로도 우리 부부는 수시로 싸우지만, 당시 아내의 일기를 통해 필자는 보고 싶은 것만 보았고, 아내에게는 불리하고 필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보를 왜곡하였으며, 이런 부조리한 행동을 정당화 하였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당시의 경험을 통해 필자는 사람간의 소통을 가로막는 근원적 장애물은 상자(象自)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련된 상담 스킬, 질문 스킬, 경청 스킬이 부족해서 아니라 ‘나의 이중성’, ‘자기 정당화’를 촉진시키는 상자(象自)에 갇혔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스킬과 행동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성찰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렇다면 상자(象自)란 무엇인가?
상자(象自)라는 단어에서의 상(象)은 맹인모상(盲人摸象)의 우화 즉 장님 코끼리 만지기 우화에 나오는 코끼리를 뜻하고, 자(自)는 코끼리를 만지고 있는 장님의 내면을 뜻한다. 물건을 담는 상자(Box)라는 말 소리와 결합하여 필자가 만든 신조어다. ‘맹인모상’의 우화는 불교 열반경에 나오는 우화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 우화가 주는 교훈은 간명하다. 각각의 장님은 코끼리의 신체 일부만을 만지고 있음에도 그 일부가 코끼리 전체인 것처럼 큰 착각에 빠져있음을 조롱하는 것이다. 즉, 부분적 진실을 전체 진실인 것처럼 왜곡하는 우리 내면의 잘못된 인식의 틀, 판단의 틀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단어다.

상자에 갇히면 자기 정당화의 심리적 왜곡이 발생하고, 자신의 잘못은 축소하고, 타인의 잘못은 확대, 왜곡, 과장하게 된다. 필자는 상자에 갇혀서 나의 잘못은 축소하고, 아내의 잘못을 확대하고, 왜곡하였고, 아내는 그것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였고, 우리 부부는 큰 위기에 직면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필자는 천우신조로 ‘상자에 갇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필자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고, 아내의 아픔에 공명할 수 있었다. 이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선 고난이도의 스킬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단지 ‘나의 내면에 나를 속이고, 자기 정당화를 촉진하는 상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느 엄마와 딸의 사례를 접하면서 필자의 확신은 보다 견고해 졌다.

어떤 엄마와 초등학생 막내딸 이야기다. 엄마는 막내딸이 못마땅하다. 공부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노는 것에만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오직 딸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대가가 없는 무조건적인 헌신을 하고 있는데 딸이 그 마음을 몰라주는 것이 무척 서운하다. 공부를 잘하는 첫째와 둘째 딸과 달리 막내 딸은 상대적으로 많이 못한다. 그럼에도 엄마는 비교하지 않으면서, 막내 딸을 사랑으로 키우고 있는데 그것을 몰라주니 서운하다. 엄마는 그런 딸을 설득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고민한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으면 최신 스마트폰을 사주겠다고 꼬신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딸은 스마트폰을 얻기 위해 한 달간은 열심히 공부를 한다.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 난 이후엔 과거처럼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는 너무 속상하고 짜증이 났고, 매를 들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막내딸과의 관계는 더욱 안 좋아졌다. 이젠 엄마의 눈도 보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엄마는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하는 자녀와의 소통 대화법 수강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핵심 내용은 언어적, 비언어적 경청을 통해 자녀의 감정을 알아주면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 강좌의 구체적인 기법 중엔 ‘I 메시지 대화법’과 ‘그렇구나’라는 말을 해주는 기법이 존재한다. 엄마는 그 기법을 혼자서 열심히 연습하였고, 딸과 대화를 할 때 여러 차례 시도하였다. 그럼에도 딸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거의 자포자기 심정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이번엔 엄마는 우연히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교양 강좌의 워크삽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 워크삽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면서, 자신의 위선, 자기 합리화를 직시하는 교육이다. 이 엄마는 이 교육을 통해 자신의 위선을 정확하게 직시하였다. 그녀는 막내딸을 진심으로 온전히 사랑한다는 생각으로 그녀를 대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면서 그것이 거짓된 행동이라는 점을 자각했다. 그리고 막내딸은 그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공부를 잘하는 큰 딸과 막내 딸을 은연중에 비교하였고, 막내딸을 믿지 못하고 비난하였다는 것을 자각하였다. 그리고 말로는 막내딸의 인생을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독려하였지만, 자신의 내면을 진지하게 성찰해 보니 막내 딸이 좋은 대학교를 진학해야 집안에서도 흠결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친구들 모임에서도 떳떳할 수 있겠다는 명예욕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막내딸은 그런 엄마의 위선을 간파하고 있었으며, 그런 위선 때문에 큰 상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막내딸이 엄마의 진심 어린 사랑을 받길 원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을 자각하자, 그 엄마는 큰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막내딸에게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말하리라 다짐했다. 이 엄마는 자기 위선을 깨달았고, 막내 딸을 오직 공부로만 평가하지 않으며, 큰 딸과도 비교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자기위선과 이중성의 원인이 되는 상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내 혹은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고민이 많은가? 직장 상사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가? 거만한 직장 후배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한가? 그들의 잘못을 떠올리기에 앞서서 먼저 자기 자신에게 질문해 보자.
‘그들에 대한 나의 판단이 정말로 옳은 것인가?’
‘그들에 대한 나의 감정은 타당한 것인가?’
‘그들은 언제나•항상 그렇게 문제를 야기하는가?’
‘그들의 잘못을 확대•왜곡•과장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들이 그런 문제를 일으키는데 내가 기여한 것은 없는가?’
성공적인 삶의 리더가 되기 위한 첫 단계는 리더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나의 잘못된 편견이 없는지를 먼저 성찰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자신의 기본 가정에 대해서 질문을 던져보자.
‘필자는 상자에 갇혀서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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